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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르셀로나의 컨택포인트

전쟁은 폴란드 명예 영사관의 기능과 업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에는 영사관은 폴란드 시민이 아니고 공무원 지위가 없고 일한 대가로 고정 급여를 받지 않는 영사가 이끌었고 폴란드 경제 홍보에 집중하는 기관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뒤 이런 업무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1939년 9월 이후 전 세계 130곳 명예 영사관은 주로 폴란드를 떠나온 난민들을 돌보고 현지 폴란드인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했다.

폴란드가 공격을 받고 난 뒤 도망 나온 난민들의 민간 및 군사 이동 경로에 위치한 국가의 명예 영사관은 특별한 방식으로 새로운 업무와 마주하였다. 폴란드 영사관은 유입되는 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낼 곳과 교통편을 찾는 것을 도왔고 수용소를 탈출한 이들을 보호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곳은 에두아르도 로돈 이 블라사 영사가 이끄는 바르셀로나의 폴란드 공화국 명예 영사관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영사관은 1939년~1942년에 포르투갈을 거쳐 영국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에서 불법으로 스페인으로 넘어온 폴란드 시민, 민간인, 군인들을 위한 컨택포인트였다. 영사관은 이들을 위해 숙박, 위조 서류, 마드리드까지의 교통편을 마련했고 스페인에 의해 체포된 사람들을 도왔다. 폴란드 영사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반다 모르비체르는 이렇게 회상했다. „난민들은 아침에는 도시로 진입해서 영사관 주소를 최대한 빨리 알아내려고 밤에 바르셀로나로 왔다. 기록 보관소였던 우리 사무실의 작은 칸막이 공간은 모습이 바뀌었다. 차, 연유, 러스크가 등장했고 전기 조리 기구, 전기면도기, 다리미, 머리가 완전 금발인 사람들을 위한 염색약도 놓이게 되었다.

Consul Eduardo Rodón y Blasa and Wanda Morbitzer on the balcony of the Honorary Consulate of the Republic of Poland in Barcelona (1930s)

에두아르도 로돈 이 블라사 영사와 반다 모르비체르가 바르셀로나 폴란드 공화국 영사관 발코니에 있는 모습(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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