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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외교 임무를 수행한 예술가, 작가 및 학자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폴란드의 재외 공관은 1939년 이전에 외교부가 정식으로 고용하지 않은 사람들로 꾸려졌다. 폴란드 외교 정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새롭고 복잡한 환경에서의 그들의 지식과 경험, 인맥은 아주 큰 가치를 지녔다. 외교 임무는 특히 예지 기에드로이츠와 유제프 레틴게르에게 맡겨졌다. 전쟁 전 보수 성향 기자로 활동했던 기에드로이츠는 1939년 부쿠레슈티에서 로게르 라친스키 대사의 비서가 되었고 폴란드에서 탈출한 난민들과 공무원들을 돕는 활동에 가담했다. 1940년 11월 폴란드 대사관이 문을 닫은 이후 부쿠레슈티에 남아 루마니아에서 폴란드의 이익을 대변하던 칠레 공사관의 폴란드 사무소를 이끌었다. 1946년에는 문학 학회를 설립하여 „문화”라는 월간지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망명 폴란드 정치 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시코르스키 총리의 정치 고문이었던 레틴게르는 1941년 소련과의 외교 관계가 재개된 후 새롭게 단장한 모스크바 폴란드 대사관의 첫번째 대사가 되었다. 전쟁 후,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유럽 통합 및 대서양 연안 국가 협력의 옹호자였다.  

저명한 자연과학자 겸 교수 카지미에시 보지츠키는 1941년 뉴질랜드 웰링턴의 총영사가 되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테인 또한 외무부 직원 여권을 제공 받았으며 이는 폴란드의 „예술적 임무”를 부여 받았음을 의미했다. 1942년 쿠이비셰프 폴란드 대사관에서는 작가 겸 기자인 크사베리 프로신스키를 공보 담당관으로 임명했고 또다른 유명한 작가인 테오도르 파르니츠키가 문화 담당관이 되었다. 후에 그는 멕시코 공사관에서도 일했다.  

Artur Rubinstein’s foreign service passport

아르투르 루빈스테인의 관용 직원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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