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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새롭게 탄생한 외교부

1939년 10월 1일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장군이 파리에서 출범한 정부에서 외교부는 아우구스트 잘레스키가 담당했다. 새 장관은 국제 외교계에서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전쟁 전 그는 스위스, 그리스 및 이탈리아에서 폴란드 해외 공관을 이끌었고 1926년부터 32년까지  폴란드 정부가 11번 바뀌는 동안에도 연속으로 외교부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1941년 7월 시코르스키 정부 당시까지 외교부 장관으로 남아있었는데 시코르스키-마이스키 조약의 준비 과정과 협상, 그리고 협상 당시 외교부 역할의 소외 등에 항의하여 사임하였다.

부처의 업무를 체계화하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시코르스키 장군 정권 형성 이후 외교부는 이전 주프랑스폴란드대사관이 있던 자리에 터를 잡고 거의 두 달간 파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때 다른 폴란드 국가 기관도 이 곳에서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공관은 여유 공간이 없었다. 1939년 11월 22일 전체 정부가 각 부처와 함께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앙제(Angers)도시로 이동하면서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프랑스 당국은 독일 국경과 떨어져 있다는 점과 앙주(Anjou)와 폴란드 역사의 관련성을 들어 그 곳으로 옮기기를 지시했다.  그러나 단 7개월 동안만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3제국의 프랑스 침공과 독일 공세가 급격해지면서 폴란드는 프랑스의 권고에 따라 보르든(Bordeaux)과 대서양 해안에 인접한 리부른(Libourne)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 도시에서 잠시 체류한 후, 폴란드 대통령 브와디스와프 라치키에비치와 잘레스키 장관의 각료들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은 영국 HMS 크루저 “Arethus”호를 타고 런던으로 대피했다.

1939년 12월 앙제에서의 정부 회의

1939년 12월 앙제에서의 정부 회의. 왼쪽부터: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수상, 유제프 할레르 장관, 헨리크 스트라스부르게르  재무장관, 아우구스트 잘레스키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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