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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루마니아의 덫에서

9월 17일 밤 열한 시경, 한 차량 행렬이 쿠티에 있는 체레모시 강을 지나는 다리를 줄지어 건넜다.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 펠리찬 스와보이-스크와트코프스키 총리, 유제프 벡 외교부 장관과 다른 정부 구성원들, 외교부 관료들, 폴란드에 임명된 외국 외교관들이  폴란드 땅에서 루마니아로 넘어온 것이다. 폴란드 당국 고위직 대표단은 루마니아 쪽에서 루마니아를 통과해 프랑스로 가는 것을 허용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쿠레슈티 책임자들은 처음에는 앞길을 준비하는 것처럼 속였다가 루마니아의 중립성과 나치 독일의 위협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폴란드 정치 지도자들을 모두 억류하기로 결정했다. 폴란드 대통령과 폴란드 정부 관계자들과 총사령관은 자유롭게 활동하고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경험이 많은 외교관이자 1939년 9월에는 국가유산부 국무 차관, 전쟁 중에는 외교부 관료였던 카예탄 모라프스키는 억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새벽 한 시에 우리는 슬래닉이라는, 산에 있는 작은 온천에 멈췄다. 시즌이 끝나서 사람이 없던지 우리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워졌던지 둘 중 하나였다 (…). 짐을 풀기 전에 우리는 루마니아 지도로 몸을 던졌다. 우리를 위해 지정된 휴식 지점은 콘스탄타는커녕 그 어떤 항구 도시로도 통하는 길이 아니였다.”

1939년 9월 18일에서 30일까지 로게르 라친스키 주루마니아 폴란드대사는 폴란드공화국 대통령과 다른 지도층 구성원과의 연락에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억류당한 이들과 프랑스에서 폴란드 당국의 가장 중요한 기관들을 다시 살려낼 방법을 찾고 있던 다른 폴란드 정치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라친스키 개인의 헌신 덕분에 그는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실을 브와디스와프 라츄키에비치에게 이양하도록 이그나치 모시치츠키를 설득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장군 정부가 설립되고 폴란드 망명 정부는 헌법의 권한을 이어갈 수 있었다.

Border bridge on the Cheremosh River in Kuty

쿠티 체레모시 강 위의 국경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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